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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1012호] 문익점의 목화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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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2-06-19 18:26 조회9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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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점의 목화씨


 

조선에서 건너간
목화씨와 직기, 기구 제조기술 등은
일본이 산업의 패러다임을
움켜쥐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나아가 임진왜란 시에는
조선 침략의 도구로 쓰인다.
임란 후 300년을
제대로 관리 못한 우리와 달리,
일본은 이후 성장의 조건을 마련하며
토요타는 약진의 발판을 굳히게 된다.
여기에는 환경적 요인과 함께
지속적인 R&D 역량이 작용한다.
이제 우리가 찾아야 할
성장에의 조건은 무엇인가?


<전경일 지음, '더 씨드(THE SEED)'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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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틀일 잘하는 며느리가
시집오면 논밭을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희미한 호롱불 밑에서
밤늦도록 물레를 돌려
실을 뽑는 기술은
조선시대 아낙네가
주로 하는 일이었기에
유행한 말입니다.

붓통에 목화씨를 숨겨온 문익점,
그는 장인 정천익과 함께
수많은 어려운 실험을 거쳐
재배에 성공하고,
세종의 재배보급 정책,
직기, 직조기술의 개발로
의류산업의 일대 변혁을 일으켰습니다.
당시 조선은 한중일 무역에 있어
목면이 주요한 품목으로
우위를 점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조선은 가정에서 필요한
옷을 만드는 것에 머물러있었던 것에 비해
일본은 조선으로부터 가져간
목화로 의류혁명과 더불어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화승총 심지나 선박의 돛 등으로 쓰이며
조선침략의 도구로
사용하기까지 이르렀습니다.

나아가 개항전후에는
일본방적기술에 의해
조선 면업은 초토화되었고,
토요타자동직기의 발명과 기술로 더욱 발전,
이는 현재 일본 토요타자동차회사의
전신이 되었습니다.

만약 문익점이 천신만고 끝에 개발한
‘목화’라는 원천기술을 근간으로
종자개발, 직기발명, 직조기술의 개발,
유통, 무역 등 시스템적으로 발전시켰으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최초의 금속활자, 비금속기술의 총아인
도자기 기술 등
‘씨앗’을 먼저 갖고 있었던 한국,
그런 씨앗이 뿌리를 내려
미래에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문익점의 목화씨와
그 이후 역사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글 : 밝은울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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